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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과학

과학혁명을 통한 근대과학 형성 어떻게 볼 것인가?

by 똑똑한 블로그 2020. 9. 7.

현재를 사는 우리가 유럽의 17세기 과학 혁명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과학혁명은 인류의 위대한 성취로 여겨져 왔다. 과학혁명기는 자연으로부터 신비주의적 유기체적인 색채를 벗겨버리고 근대의 과학, 기술, 사회 진보의 초석을 놓은 인류의 지적 계몽의 시기로 평가받아왔다.

 

과학 혁명은 자연을 살아 있는 것에서 기계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고, 우주의 모든 물질을 생기 없고 따로따로 고립된 입자적인 것으로 만들었으며,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생명의 기운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무생물적인 힘의 전달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환원시켰다.

 

과학혁명의 주역들 중에는 케플러같이 여전히 르네상스의 신비주의적인 사조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새롭게 해석해낸 우주는 신비적인 색채란 조금도 없는 기계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수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면 이 기계적인 것의 작동 비밀을 손에 얻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이로써 그때까지 접근하기 어렵고 신비로운 우주 앞에서 경이와 두려움으로 떨었던 인간은 이제 자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다.

 

근대 과학이 형성되기 이전


근대 과학이 형성되기 이전의 서양 중세의 사람들이 자연을 보던 관점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적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그 구성물들이 모두 따로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된 유기체적인 것 그 속에 운동의 원리가 들어 있고 자발적으로 운동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것은 인간의 기교나 강제력에 의존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다. 이 유기체는 각 구성 부분들이 서로 관계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장인들의 기술같이 유기체인 자연에 변형을 가하는 것은 자연을 기만하고 속이는 것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의 추종자가 썼다는 역학의 문제들이라는 책을 보면 그가 지레 같은 장치를 사용하여 작은 힘으로 커달나 짐을 움직이는 기술은 자연에 반해 일어나는 자연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자연을 왜 유기체라고 생각했을까?


자연이 유기체라는 생각은 자연과 인간이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나아간다. 이는 우주라는 유기체 속에 인간이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 이외의 자연이라는 유기체의 생명이 인간이라는 개체의 생명과 서로 계층을 이루면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적 자연관은 중세가 끝나고 근대 과학이 형성되는 시기인 16세기와 17세기에도 상당히 남아 있었다. 이 예시를 우리는 1609년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사용해서 목성의 위성을 발견했을 때 그에게 가해진 비판을 통해 볼 수 있다. 갈릴레이가 자기 자신이 직접 만든 망원경을 사용하여 아주 새로운 천문학적 사실을 발견했을 때 대학의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들 중에는 그 사실을 진리라고 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자연이란 아무 변형도 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해야만 그것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자연에 망원경이라는 인간의 기술적 생산물을 들이대어 새로운 것을 찾아냈다면 그것은 자연의 본질을 아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진리와는 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