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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과학

낭만주의적 과학의 등장과 실패

by 똑똑한 블로그 2020. 9. 4.

낭만주의 과학의 등장


다윈의 진화이론과 멘델의 유전법칙으로 이제 생물학마저 기계론적 과학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사실 멘델은 물리학을 공부했지만. 

 

이 새로운 경향의 과학에 대한 반발도 없지는 않았는데 기계론적 과학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경향은 어제오늘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이미 18~19세기에 낭만주의와 독일 자연철학이 등장하여 기계론으로부터 유기체적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낭만주의적 반동의 최고봉이었던 괴테


이들 낭만주의적 '반동'에 가담한 사람들 중 최고의 정신은 괴테였다. 물론 괴테는 독일 계몽 사조의 최고봉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괴테는 과학 이외의 부문에서는 대단히 계몽적이었지만 과학에서는 뉴턴적인 냉혹한 과학을 따뜻한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고 그의 이러한 의도가 그를 낭만주의적 과학으로 나아가게 했던 것이다.

 

그는 생물학 연구에서 지금도 무시할 수 없는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 자신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겼던 업적은 근대 과학에서 보면 시대착오적인 색채이론이었다. 이것은 뉴턴적 자연철학 전체에 대한 반론이었다. 이로써 그는 기계론적 자연을 유기체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것이다.

 

 

괴테의 뉴턴 과학에 대한 적대감은 우주를 연속적으로 본 것으로 본 스토아학파가 원자론을 신봉했던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해 가졌던 적대감과 비슷한 면이 있다. 그는 원자, 입자, 프리즘으로 분해된 광선과 같은 고정적, 분절적인 자연에 반대하여 생물학적인 연속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괴테는 뉴턴의 오류는 실험과 추상화에 기초한 그의 방법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으로 보았다. 뉴턴의 방법은 수학을 사용하여 자연을 추상화하고, 망원경, 프리즘, 거울 등의 도구를 들이대어 자연을 조작하고 괴롭힘으로써 결국 자연으로부터 생명을 앗아가고 만다는 것이다.

 

그는 고대 이래의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자연의 근원까지 파헤쳐 들어가면 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견지에서 나왔다. 자연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으려는 괴테의 생물학적 낭만주의는 독일에서 자연철학이라는 학파를 낳는데 여향을 미쳤고 자연철학은 독일 과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물론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자연철학적 방법을 따른 학자들 중 간혹 성공적인 결과를 얻은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19세기의 많은 독일 과학자들은 알게 모르게 자연철학에 침윤당했고 특히 독일 생물학의 연구 스타일은 그것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러나 실제의 과학적 성과가 별로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19세기 말이 되면 자연철학은 기계론적 과학에 완전히 패퇴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