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시를 한번 들어보자 "무거운 물체는 빨리 떨어지고 가벼운 물체는 느리게 떨어진다"라고 하는 우리의 일상적인 앎을 크게 뛰어넘는 새로운 앎이란 존재할까? 결론은 그렇다이다. 현대 과학은 이 앎을 적어도 몇 번에 걸쳐 뛰어넘고 있다. 그 가장 초보적 형태가 이른바 갈릴레이의 낙하 법칙이다. "지구 상의 모든 물체는 그 질량에 무관하게 일정한 가속도를 지니고 낙하한다."라는 또 하나의 앎이 그것이다. 그러면 이 두 가지 앎은 서로 어떻게 다른가?
그 차이를 '정밀성'과 '신뢰성'이라는 두 측면에서 비교해보자. '정밀성'이라 함은 빠르면 얼마나 빠른 것을 말하며, 느리면 얼마나 느린 것을 말하는가에 대한 구분 가능성을 의미한다. 일상적 앎에서는 적절한 부사를 도입하여 '아주' 빠르다, '약간' 빠르다 정도의 개략적 구분만을 하게 되지만, 과학적 앎은 정도의 차이에 대해 사실상 무제한의 구분 가능성을 허용하고 있다. 곧 속도라는 물리적 개념을 실수 공간에 대응시켜 서술함으로써 원칙적으로는 어떤 미세한 차이라도 모두 구분해낼 언어를 구사하게 된다.
다음에 신뢰성, 곧 이러한 앎이 실제 현상과 부합되리라는 보장을 얼마나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미 말했듯이 일상적 앎에서는 몇 개의 사례가 나타나면 무의식 속에 이를 일반화하여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지만, 과학적 앎에서는 의도적인 검증 절차, 곧 '실험적' 검증이라는 것을 거치면서 그 앎에 대한 신뢰성을 크게 높이게 된다. 위에서 예로 든 "무거운 물체는 빨리 떨어지고 가벼운 물체는 느리게 떨어진다."라는 앎은 대기 중에서 깃털과 돌멩이가 떨어지는 현상을 비교할 때는 분명히 옳지만, 무게가 다른 두 돌멩이가 떨어지는 경우에는 옳지 않다.
이들은 거의 동시에 떨어지게 된다. 한편(공기의 마찰을 무시할 경우에는) "지구 상의 모든 물체는 그 질량에 무관하게 일정한 가속도를 지니고 낙하한다."라는 갈릴레이의 법칙은 의도적인 검증의 과정을 거친 것 이어서 그 신뢰성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월하다. 새로운 앎의 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몇 단계 더 뛰어넘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구 상의 물체는 왜 일정한 가속도를 지니고 낙하하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우리가 지닌 기존 관념의 틀 안에서는 대답할 수가 없다. 여기에 대해 적절한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고전역학,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등 새로운 과학이론 곧 새로운 앎의 틀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갈릴레이의 법칙은 지구 상에서의 낙하운동에만 적용되는 하나의 단편적 지식일 뿐 여타의 지식들과는 별 연관을 맺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이것은 달 위에서 물체가 떨어지는 현상에 적용할 수 없으며, 또 달이 지구를 도는 이치와 연관 지어 이해할 방법도 없다. 이러한 점에서 이것은 일상적 앎의 경우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과학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기존의 앎에 비해 더 정밀하고 더 확실한 앎만이 아니라 전체를 아울러 한눈에 내다볼 수 있는 통합적인 앎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내가 사는 세계의 전모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되며 여기에 바로 과학적 앎이 지닌 진정한 힘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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