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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과학

앎의 틀과 내용 그리고 무의식

by 똑똑한 블로그 2020. 8. 29.

과학적 앎의 이러한 성격을 좀 더 잘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앎이라는 것이 지닌 기본구조에 대해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흔히 앎이라면 이것이 지시하고 있는 '내용'만을 떠올리기 쉬우나, 사실 앎이라는 것은 그 내용과 함께 이것을 담게 되는 틀을 지니고 있다. 이 틀은 말하자면 내용을 담는 그릇에 해당하는 것이며, 이 틀 안에 담기는 내용은 틀 자체와 구분하여 '정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일단 그 틀이 고정된 앎의 경우 그 안에 담긴 내용, 곧 정보가 많을수록 앎의 양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할 보다 나은 형태의 앎은 그 내용뿐 아니라 틀 자체의 우월성에서 온다. 즉 정보만이 아니라 정보를 담을 그릇 자체의 개선이 요청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일상적 앎이란 일일 상적으로 공유된 틀을 바탕으로 정보의 출입에 주된 관심을 가지게 되는 지식이라고 할 수 있겠고, 과학적 앎은 체계적으로 향상한 틀과 그 안에 담기는 정보를 총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일상적 앎의 바탕을 이루는 이러한 틀은 우리가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것이며, 자신의 사고가 이러한 틀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조차 우리는 거의 의식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어느 면에서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만일 이러한 높은 수준의 지적 작업을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이루어내야 한다면 여기에는 엄청난 고통이 수반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이러한 작업을 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게 되며, 따라서 별다른 어려움이나 고통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습관화'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의식에까지 그 지식과 행동이 들어오게 되면 처음에는 엄청 힘들었던 그 일이나 지식들이 나중에는 너무나 쉽고 간단해진다. 

 

반면에 이러한 상황은 또 우리의 지적 활동에 제약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무의식 가운데 기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의 지배에서 벗어나기가 매우 어려워지는 것이다. 우리의 사고가 어떤 틀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에 대해 의식적 검토를 수행할 수 없게 되고 따라서 이것이 부적절한 경우에도 이를 적절히 수정하기가 어려워진다. 물론 우리의 경험 영역이 넓어지면서 기왕의 틀로는 이것을 수용할 수 없게 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새 틀을 만들어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인식하기도 한다.

 

이를 일러 우리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의식 차원에서 얻어지는 이러한 깨달음이 어느 수준 이상 올라가는 것은 매우 희귀한 일이며, 또 그렇게 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하더라도 이를 남에게 전해주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사실 과학이 발견한 매우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앎의 틀을 무의식 속에서가 아니라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 구축할 수 있으며 또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과학이라 함은 앎의 내용뿐 아니라 앎의 이러한 틀을 체계적으로 향상하는 노력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을 우리 두뇌의 자연스러운 활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 이루려고 할 때, 우리의 지적 활동은 이를 향한 일종의 제재를 받지 않을 수 없으며 이는 불가피하게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게 된다.

 

사람들이 흔히 과학, 특히 물리학의 학습을 어려워한 느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요구되는 새 앎의 틀이 무의식 속에 형성된 기존의 틀과 상충하는 경우, 자신의 사고는 여전히 기존의 틀을 바탕으로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학습은 새 틀을 통해 사고하기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학을 학습함에 있어서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요구되는 새 틀과 이에 해당하는 기존의 틀을 다 함께 의식의 차원으로 떠올려 그 하나를 분명히 폐기하고 다른 하나를 그 자리에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틀이 무의식 차원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되면 이것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이러한 지배는 지속적으로 갈등을 야기하고 새로운 틀의 수용을 방해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말하자면 과학을 공부하기 전에 이미 스스로 만들어 활용하고 있는 자기 고유'이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맞는 것이든 틀린 것이든 말이다. 따라서 이 이론을 이끌어내어 수정해주지 않는 한 우린느 이에 상충되는 새 이론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